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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28) 이수진(동작을 의원)의 독선, 당 대표가 독재하는 줄로 착각해

최자영 | 기사입력 2024/02/23 [22:47]

[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28) 이수진(동작을 의원)의 독선, 당 대표가 독재하는 줄로 착각해

최자영 | 입력 : 2024/02/23 [22:47]

검찰개혁 못 한 것은 이재명이 아니라 소수당과의 ‘협치’ 강요하는 국회의장 김진표 탓
이수진이 검찰개혁 원했다면, 당 대표가 아니라 검찰개혁 반대하는 ‘수박’ 의원들 비난해야
다수의원이 검찰개혁 원했다면, 이재명이 반대했을 리 만무하다
‘당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보기 전 주민이 직접 의원 순서 정하도록 제도 개선했어야
“경쟁력 있는 자기”에게 피해가 돌아올 때까지 복지부동한 이수진은 자업자득

서울 동작을 지역구 이수진 의원이 공천에 탈락(컷오프)되었고, 그에 반발하여 탈당했다. 탈당의 변(辯)을 소개하면, “민주당이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 “이대로 가면 민주당이 어렵게 된다 등의 의사를 전달했으나 듣지 않았다”, “이재명을 보고 물러나라고 했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이재명 관련 백현동 관련 판결문을 보고 그 결과가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 중도파는 판결문 보고 실망했을 것이다“, “당 대표 물러나라는 것이 아니라, 총선 지휘를 놓고 좀 물러나라고 했다”. “가장 경쟁력 있는 저를 내모는 것은 모략, 사감이 작동했다고 본다”, “당에서 동작을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동작을은 고가 아파트가 많고 험지이다”, “그래서 제가 승복을 못 한다”, “저는 검찰, 사법개혁을 하려고 했다”, “대선 직후 이재명에게 가서 두 달 안에 검찰, 사법개혁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이재명이 움직이지 않았다”, “비대위원장, 당혁신위원장 인사에 실패했다” 등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수진의 이 같은 말에는 몇 가지 오류 있다. 무엇보다 방법론 형식에서 문제가 있다. 이수진의 짧은 탈당의 변에서 그 개혁의 내용을 다 평가할 수는 없으나, 형식의 면에서 보이는 허점을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내용을 언급할 수는 있겠다.

다른 무엇보다 이수진이 검찰·사법 개혁이 안 된 잘못을 이재명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오류이다. 이수진이 대선(윤석열 당선) 직후 이재명에게 “두 달 안에 검찰·사법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재명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하더라고 한 것이 그러하다. 이 같은 이수진의 말은 검찰·사법 개혁을 이재명이 마음만 먹으면 ‘두 달 안에’라도 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전제는 현실적으로 성립하지 않으므로, 이런 이수진의 요구 자체가 앞뒤 맥락 없이 허황한 것이 된다.

검찰·사법 개혁 못한 것은 민주당 의원 다수가 ‘역풍’ 불까 봐 걱정하여 복지부동한 탓이다. 특히 김진표는 소수당(현 여당)과의 협치를 강조하고, 소수당과 합의가 없으면, 상임위를 통과한 안건에 대해서도, 본회의 상정을 거부한 이이다. 그런 환경에서 이수진은 이재명을 찾아와서 “‘두 달 안에’ 검찰·사법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문한 것이다.

더구나 이수진은 검찰·사법 개혁 실패 관련하여 민주당이 비대위원장, 당혁신위원장 인사에 실패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인사 실패는 김진표를 국회의장에서 뽑은 데서부터 비롯한 것이고, 김진표를 뽑은 책임을 이재명에게 다 뒤집어씌울 수가 없다. 민주당 의원들이 모두 책임질 일이고, 거기서 이수진 자신도 자유롭지 못 하다. 국회의장, 비대위원장, 당혁신위원장 등을 가리지 않고 그러하다.

검찰·사법 개혁을 하고 싶어 했다는 이수진은 종용할 대상을 잘못 골랐다. 정말 검찰·사법 개혁을 하고 싶었다면, 이재명이 아니라 검찰·사법 개혁에 노골적으로 반대해온 이른바 ‘수박’으로 불리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작업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수진은 그렇게 한 것 같지 않다. 자신이 이재명을 찾아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수진은 당 대표가 당에서 독재하는 줄로 안다. 당 대표가 검찰·사법 개혁을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줄로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당의 구성원(평의원)들이 움직여줘야 한다. 의원들이 반대하고 복지부동하면, 당 대표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한다. 오히려 당 대표가 쫓겨날 가능성이 있다. 사주하는 뒷배가 있었는지 여부, 혹여 있었다면 그게 누구인지 현재로서 알 수 없으나, 당 대표 목에 칼이 들어 왔다. 그래서 자기는 “‘두 달 안에’ 하고 싶었으나, 이재명이 움직이지 않아서 검찰·사법 개혁이 안 되었다”는 이수진의 말은 독선이 된다.

이수진의 독선은 또 있다. 자신의 지역구인 동작을구가 민주당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것, 이재명에게 자기 지역구에 와서 지원사격을 좀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재명이 응하지 않았다는 발언, 당을 위해 헌신해 온 젊은 청년 의원 전용기(청년위원장) 등(총 2명 언급)을 내침으로써, 앞으로 당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청년이 없을 것이라는 발언 등이 그러하다.

이 같은 이수진의 의견이 사실에 부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용의 참 여부를 떠나 그것은 논리의 형식에서 독선적이다. 첫째, 자신의 지역구인 동작을구가 민주당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이수진의 말은 다른 지역구는 동작을구보다 중요성이 덜 하다는 평가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다. 지역구 하나하나가 다소간에 다 중요하다.

이수진은 나경원과 붙어서 승리했으므로, 그것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징표,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나경원에게 승리한 것이 자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고도 보는 것 같다. 이런 이수진의 생각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의 승패는 상대적이라, 자신의 자질만이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가 가진 약점도 한몫한다. 당시 나경원에게 얽혔던 갖가지 비리 의혹이 그러하고, 같은 인물이 계속되는 데 대한 사람들의 염증에 편승하여 신인(新人)이 주는 신박함, 판사라는 남다른 이력, 뿐 아니라 당시 190석에 가까운 의석을 따낸 민주당의 시운(時運) 등에 편승했을 수도 있겠다. 이런 요인은 정치적 감각이나 능력, 가치관 등 이수진 개인의 자질과는 무관한 것이다. ‘진인사대천명’이다. 일이 성사될 때 거기에는 다양한 요소가 개재한다.

이수진은 이런 정황들을 무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득표의 상대적 우위를 개인적 자질이나 능력의 절대적 우위로 해석하고 싶어한다. 동작을구 주민은 이수진뿐 아니라 나경원을 향해서도 웃는다. 이수진이 자기를 보고 웃어주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면, 나경원도 그러하다. 다만, 지난번 총선에서는 득표수에서 이수진이 나경원을 상대적으로 이겼을 뿐이다. 그 웃던 면면을 생각하면 나경원도 이수진 못지 않게 출마해서 돌아오고 싶어할 것이다. 웃는 얼굴을 두고 말하자면, 이수진과 나경원은 같은 입장에 있다.

둘째, 자기 지역구에 와서 지원사격을 좀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재명이 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이수진은, 이재명이 지역구 혹은 자신을 무시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지역구에서 고생하는 자기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이 이수진의 요구를 무시한 것은 지역구나 지역구 의원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의원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것일 수도 있다. 이수진만 지원할 수도 없고, 그렇게 지역구 지원하자면, 당 대표가 그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게 될 것이고, 다른 일은 보지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이수진의 서운함은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이의 형편을 배려하지 못 한 탓이라 하겠다. 동작을구가 다른 지역구보다 특별하게 어려운 곳이라고 이수진이 생각한다 해도 그러하다. 동작을구가 실로 다른 어떤 지역구보다 민주당에게 더 어려운 곳인가 하는 문제는 여기서 별론으로 한다.

셋째, 당을 위해 헌신해 온 젊은 청년 의원 전용기(청년위원장) 등(총 2명 언급)을 내침으로써, 앞으로 당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이수진의 의견도 독선이다. 전용기 등 총 2명이 당을 위해 헌신해온 사실 여부를 불문하고, 논리의 형식을 보면 그러하다. 전용기 등 총 2명 외에 다른 청년 당원 혹은 의원이 없다든가, 다른 이가 있다 해도 이들이 민주당 내 청년들의 입장을 평균적으로 대변한다든가, 또 이들과 다른 가치관, 행동양식을 가진 청년들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든가 할 때에만 이수진의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수진이 언급한 2명을 내쳤다는 사실이 헌신해온 청년들을 당에서 죄다 무시한 처사라고 일반화할 수가 없다.

이수진은 생활보호대상자로서 어머니와 함께 빈곤한 가정에서 컸고, 마침내 판사가 되었다는 기특한 자신의 이력을 소개했다. 그런데 이런 이력이 반드시 판단의 독선성과 자기중심적 이기주의를 없애준다거나, 정무감각의 객관성, 보편성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다.

또 이수진은 “가장 경쟁력 있는 저를 내모는 것은 모략, 사감이 작동했다고 본다”, “당에서 동작을구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이곳은 고가 아파트가 많고 험지이다”, “당에서 제대로 된 분석을 못 하니, 그래서 제가 승복을 못 한다” 등 발언을 했다.

이런 발언에서 이수진은 다시 두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나는 자신을 “가장 경쟁력 있는 이”라고 평가하는 것, 다른 하나는 “당이 동작을구에 대해 제대로 된 분석을 못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는 현재로서 이수진 개인의 판단이다. 이수진은 이런 자신의 판단을 객관적 진실이라 ‘의제(擬制: 성질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을 우선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평가의 사실 여부는 직접 주민투표를 거쳐봐야 한다. 그전에는 그 사실의 진위를 아무도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이수진은 “당이 제대로 된 분석을 못 하니(혹은 ‘못 하고 있는 것 같으니’), 그래서 제가 승복을 못 한다”고 했다. 이때 이수진은 자기의 능력을 바르게 평가받지 못 하는 것이 대수이고, 다른 이도 그렇게 억울한 지경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만일 그런 데 생각이 미쳤다면, 공동으로 겪는 그 같은 질곡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는 모르겠고 자기만, 또 다른 지역구는 모르겠고 동작을구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독선이고, 그 독선은 자신이 특별하게 ‘경쟁력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차원이 같다. 그러나 누구든 자신이 언제나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오만에 가깝다. 일면 경쟁력이 있다 해도, 다른 측면에서 부족한 부분은 늘 있게 마련이라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경쟁력 여부와 무관하게 신은 오만한 이를 벌하고, 그런 이를 ‘땅으로 끌어내려 낮춘다’.

한편, 이수진은 “당이 자기를 버릴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전에 그런 가능성에 대해 대비하고, 조치해야만 했다. 잘못할 수 있는 당의 판단에 자신을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쟁력 있다고 믿는 주민에게 직접 결정하도록 진작 제도를 고쳐놓았어야 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유럽의 선진 여러 나라에서는 당이 아니라, 지역구 주민이 직접 의원의 순서를 결정하하게 한다.

이수진은 민주당을 두고, “리더쉽(지도자 능력)이 붕괴하고, 사람을 볼 줄 모른다”, “비인간적 비열함, 배신, 무능함, 비정함, 책임은 약자에게 떠넘겨버리는 불의함” 등을 연출하는 존재로 평가했다. 민주당이 다소간에 그런 점이 있다면, 국힘당은 그렇지 않을까? 만일 여야가 공히 그런 것이라면, 민주당만 욕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이수진은 민주당만 대놓고 나무랄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정치 풍토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근원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이수진은 당 대표 이재명에게 “물러나라고 했다”, “당 대표 물러나라는 것이 아니라, 총선 지휘를 놓고 좀 물러나라는 뜻이었다”고도 했다. 그 어느 쪽이든, 이수진은, 한편으로 이재명이 어떤 식으로도 물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

이수진이 “경쟁력 있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 하고”, “자기를 버리려 하는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수진이 ‘당의 잘못된 판단’이 ‘경쟁력 있는 자기’에게 닥쳐서야 비로소 반발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불합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하는 이기주의이다. 잘못된 당의 판단이 자기에게 닥쳐올 때까지 제도 개선에 손 놓고 복지부동한 것은 당을 나무라기에 앞서 이수진의 자업자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