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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⑮ 만나지 않는 평행선, 따로 가는 국회 정당정치와 촛불시위

최자영 | 기사입력 2024/01/07 [19:19]

[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⑮ 만나지 않는 평행선, 따로 가는 국회 정당정치와 촛불시위

최자영 | 입력 : 2024/01/07 [19:19]

윤석열, 한동훈, 정성호 등이 제각기 ‘국민’을 대변한다고 하니, 국민투표로 진실 가려야
민주당 의원 정성호가 정당 공천권을 ‘국민’의 뜻에 따른 민주적 제도로 호도해
선거법 개정한다고 개혁되는 거 아니다
국회의장 독재, 대통령 거부권, 헌법재판소의 정치 관여 등 제한 해야
위정자가 침묵하는 금기 두 가지는 주한미군과 국민주권 관련

지금 한국이 처한 질곡이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을 안 해서 그렇다는 말이 일각에서 회자한다. 개혁이 안 되는 것이 선거법 때문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선거법 개정만 하면, 국회가 잘 돌아가고, 개혁도 되고, 현재의 질곡도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믿고 있거나, 그렇게 민심을 호도하려 한다. 그런데 각론에 들어가면, 선거법을 어떻게 고쳐야 잘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구구하다.

그러나 오늘의 질곡은 국회의원 선거법 고친다고 해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선거법 고치자는 주요 취지는 거대 양당의 독주를 지양하고 다당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 운영 원칙을 보면, 양당이나 다당이나 상황은 그 나물에 그 밥 될 것이 확실하다. 소수 정당과 국회의장이 내거는 협치와 화해의 대원칙하에 십중팔구 짬짜미가 횡행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야당이 불법 비리 검사 탄핵을 추진했더니, 소수 여당에서 “힘자랑 하느냐”고 조소한다. 다수당이 되어도 ‘힘자랑’하면 안 되고, 소수당과 짬짜미를 해야 되는거 아니냐는 것이다.

이것이 국회의 풍속도이고, 국회에 몸담은 이들의 가치관이다. 이들의 눈에는 토요일마다 서울로 모여드는 촛불 민중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 따로, 촛불이 따로 논다. 국회가 민심을 반영하지 못 하는 것은, 그 구성원이 양당 혹은 다당 여부와 무관하게, 국회 자체가 입지한 제도적 한계와 그 구성원들의 이기적 생리 때문이다.

제도적 한계로서는 국회의장의 독재, 대통령의 거부권, 국회 위에 군림하는 헌법재판소 등이 있다. 우선, 국회의장은 다수당의 뜻을 개무시하고 올라온 의제를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는다. 소수당의 동의가 없으니 본회의를 개최할 수가 없다는 말을 국회의장이라는 이가 공공연히 천명한다. 국회에서 다수결의 민주적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 것은 국회의장의 독재 때문이다. 국회의장과 소수당 동의 없이는 다수당만으로 본회의 개최를 못 한다고 한다. 그래서 다수 민주당 내에 수박들이 양산되고, ‘협치’ 타령에 다수당은 식물이 되어버렸다. 아예 포기하고, 좋은 게 좋다고, 원만한 얼굴을 디밀다보니 ‘수박’이 되어버렸다.

노란봉투법 등 법안이라고 통과시켜 놓으면, 대통령이 앉아서 거부권 행사하여 무효가 된다. 대한민국 출범 이후 처음으로 판사 임성근, 행안부 장관 이상민을 탄핵시켜 놓으니, 헌법재판소가 다 풀어주었다. 그래서 국회에서 다수당은 헛손질하고 있다.

국민이 뽑은 다수당 위에 국회의장, 소수당, 대통령, 헌법재판소가 군림하여 국회를 식물로 만들고 있다. 이런 바탕에 선거법 개정하여 다당제 만들어 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렇다면, 선거법 개정하자고 떠들 것이 아니라, 우선 국회의장의 독재를 처벌 탄핵하고, 의장이 본회의 개최를 거부할 경우, 국회의원 일정수의 서명으로 본회의를 개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의 거부권 때문에 식물국회가 될 전망이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비해, 의원 2/3가 아니라 다시 1/2(과반수)의 의결로 재가결될 수 있도록 입법해야 한다. 서구에서는 과반수 의결이 있을 뿐, 과문한 필자는 2/3를 요구하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 했다. 또 9명 임명직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가 선출직 300명 국회의 결의를 뭉개면, 그 헌법재판소의 과두적 독재를 지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경우 다시 국회, 혹은 국민투표로 그 타당성을 검토 심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은 과두독재가 아니라 명색이 ‘민주’ 국가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발목을 잡는 이같은 허다한 문제는 홑이불로 덮어놓고, 막무가내 선거법 개정을 하지 않아 개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회 내에도, 시민단체에도 그런 이들이 있다. 이들은 국회의장, 소수당, 대통령, 헌법재판소에 예속되어 권력의 시녀 노릇 하고 있는 국회를 개혁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양당만 아니라 기존 소수당(신당 창당은 기피)도 들러리로 구색 갖추는 데 이용하고, 서로 짬짜미해서 그냥 국회 의석을 나누어 먹자는 심보가 아니라면, ‘새대가리’도 아닌 멀쩡한 이들이 왜 ‘선거법’만 떠들어대는 것일까?

이들이 ‘다당제’ 하자고 떠드는 주장도 자가당착이다. 거대 양당의 독주를 지양하고 다당제를 실천하기 위해 의원내각제 한다고 하더니, 정작 거대 양당은 신당 창당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 혹은 다당제를 시행한다고 개혁이 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여야 막론하고 다당제 자체를 기피하는 것 같다.

전 국힘당 대표 이준석이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회자하자, 국힘당에서는 별로 반기는 기색이 아니다. 민주당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촛불 행동에 참여한 여러 단체 가운데 ‘촛불전진’이 ‘국민주권당’을 만들겠다고 200인 발기인을 모아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랬더니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들을 촛불을 배반하는 이들로 매도하기도 한다. 정말 다당제를 지향한다면, 여야 모두 신당 창당을 오히려 후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집권욕을 가진 거대 양당은 그렇지 않다. 국회의장 김진표가 내내 버리지 않는 꿈, 의원내각제는 애초에 다당제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당제는 명분일 뿐, 속내는 국민의 발언권을 정치에서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권력을 국회에서 뽑는 총리에게 집중시키고, 국민 민초가 뽑은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양두구육이 따로 없다.

또 제각기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고 떠드는 위정자들이 기회만 있으면 국민의 입을 막으려 하는 것도 역설적이다. 주지하듯이, 윤석열, 한동훈이 ‘국민’을 대변하는 것처럼 떠드는 것이 그러하다. 윤석열이 이해하는 ‘국민’은 ‘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지지를 해도 자기 뜻대로 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자기는 ‘국민’을 대표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윤석열과 한동훈만 그런 것이 아니고, 민주당도 똑같다는 점이다. 한 예가 친명계 좌장 격이라고 언론에서 떠드는(실제로 좌장 격일지 필자로서는 알 수가 없다) 민주당 의원 정성호이다. 정성호는 SBS 라디오에 출연해 “의회 민주주의, 대의 민주주의 본질을 훼손하는, 반민주적인 것”, “주권자 국민의 뜻과 관계없이 여기저기 출마시킨다고 하는 것은 선거에 안 맞다” 등 발언을 했다고 한다.(서울신문, 2013.11.10.)

정성호의 이 같은 발언은 김두관 의원의, “국힘당보다 더 많은 다선 의원을 험지로 보내는 ‘내 살 깎기’를 시작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앞장서라. ‘친명 안방, 비명 험지’로 방향을 잡았다간 100석도 건지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에 대한 답변이다.

정성호는 이재명 대표의 험지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어떠한 선택도 한다고 했으니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게 바람직한 건지 잘 모르겠다", ”험지 출마하라는 건 사실 정치를 그만두라는 소리“라고 했단다.

“‘내 살 깎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김두관의 발언을 “의회 민주주의, 대의 민주주의 본질을 훼손하는 반민주적인 것”으로 이해한 정성호가 간과한 것이 있다. 그것은 ”다선 의원을 험지로 보내는 ‘내 살 깎기’”만 반민주적인 것이 아니라, 정당에서 공천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반민주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성호는 정당 공천제가 의회 민주주의, 대의 민주주의, 국민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거꾸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정성호의 논리에 따르면, “다선 의원을 험지로 보내는 ‘내 살 깎기’”를 안 하면, 정당에서 행사하는 공천권이 주권자 국민의 뜻에 맞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내 살 깎기’를 하든 안 하든 무관하게 정당에서 행사하는 공천권은 “주권자 국민의 뜻과 관계없이 여기저기 출마시키는 것”이 되고, 그래서 “선거에 안 맞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의 뜻에 맞으려면, 독일이나 미국 같이 후보자의 순서를 국민 민초가 직접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또 행정부(대통령), 국회를 가리지 않고, 위정자는 ‘국민의 뜻’을 아전인수로 해석한다. 윤석열도, 한동훈도, 정성호도 죄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강변한다. 이렇게 마음대로 ’국민‘을 끌어대는 것은 국민을 이용, 우롱, 농락하는 것이다.

이런 착각과 혼란을 어떻게 교정해야 할까? 해결책이 아주 간단하다. 직접 국민투표해서 물어보도록 하면 된다. 그런데 여야 가리지 않고 그것을 안 하려고 한다. 그 대신 날이면 날마다 여론조사라는 것만 불티나게 한다. 대개 사람들이 전화 오면 후딱 끊어버리고 대답조차 기피하는 그 여론조사. 여론조사 하고 말 것이 아니라, 국민투표 해야 한다. 주권자로서 국민은 필요한 사안에 대해 능동적으로 국민투표에 부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하겠다.

여야 가리지 않고 대개의 위정자들이 공유하는 불문율이 있다. 지지고 볶고,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싸워도 정치는 지네들끼리만 하는 것인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해방 후 지금까지 그런 것만 보고 익힌 탓에, 쩔어빠진 타성에서 스스로 탈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정치는 민주 시민이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늘 하던 이만 하는 배타적 직종, 무슨 텃세 낸 업(業)인 줄로 안다.

‘정치꾼’으로서의 위정자들은 정작 중요한 것은 피하고 변죽만 울리면서 국민 민초를 배반한다. 그 변죽은 ‘자리 따먹기’ 용이다. 다수당을 무시하는 국회의장의 독재, 국회를 물 먹이는 대통령의 거부권, 국회 위에 군림하는 헌법재판소의 과두독재를 입법으로 제한할 생각은 정작 하지 않고 의원내각제와 선거법 개정을 떠드는 것이 그러하다.

눈앞에 뻔히 보면서도 위정자들이 당달봉사같이 외면하고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있는 것이 또 있다. 위정자로서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입 다물고 있어야 할 두 가지 금기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미군 관련(전작권, 유엔사, 한미연합훈련 등을 부정하는 것) 발언을 피하는 것, 다른 하나는 식물국회 개선과 국민주권(국민개헌발안, 국민에 의한 국민투표 부의권과 국민투표권, 공직자 처벌을 위한 소환권)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다. 그것은 삼권이 야합하고 국민 민초를 백안시하는 현 정치판의 권력구조를 흔들지 못 하도록 하고 있다.

위정자에게 맡긴 채 마냥 믿고만 있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 민초가 직접 나서야 한다. 촛불이 지향하는 바는 권력 정당의 교체가 아니라, 여야 위정자 간에 다소간 이루어지는 짬짜미를 근원적으로 막는 것, 외세에 빌붙어 득세하려는 이를 근절하고 민초의 주권을 세우는 것이다. 위정자들을 옭매는 금기를 민초가 나서서 파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