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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54) 김건희 무혐의 결정한 양두구육의 국민권익위원회, 죄형법정주의 가면 쓰고 법 왜곡해

최자영 | 입력 : 2024/10/13 [13:10]

군중 심리와 죄형법정주의를 서로 상반된 개념으로 설정한 국민권익위의 ‘듣보잡’ 논리
군중(민심)에 대응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가 아니라 소수 및 일인독재
문화대혁명의 인민 재판과 비교, 대조됨직한 이승만 독재정권의 인민 학살
군중, 소수, 일인이 모두 군중의 일부, 어느 것도 인간적 독선을 피해갈 수 없어

일전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신고 사건을 무혐의 종결하는 과정에서, 사건 무혐의 ‘종결’에 반대하는 소수 의견이 개진되었다고 한다. 그 소수 의견을 의결서에 적어 넣을 것인지를 두고 권익위원들 간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의결서에 소수 의견을 담지는 않되, 그 자리에서 소수 의견을 낭독하는 형식으로 회의록에 남기는 절충안이 채택되었다, 회의록 상 발언자는 전부 익명 처리됐다.

우여곡절 산고를 거쳐 나온 회의록을 통해 드러난바, 사건 무혐의 ‘종결’에 반대하는 소수 의견이 개진되자, 다수 의견을 대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위원(들)이, 나치 독일, 중국 문화대혁명을 거론하면서 명품가방 수수를 비판하고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을 비합리적인 군중 심리로 비난하고, “민주주의의 다수결에 따른 민심이 마치 정의로 보이는 착시 현상”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경향신문, 2024.7.25.)

권익위 다수 의견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한편에 군중 심리나 민심은 정의가 아니라는 것, 다른 하나는 죄형법정주의, 근대적 법인식 및 헌법의 대원칙을 옹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 관련하여 다수 의견은, “이 사건의 본질은 미움”, “법으로 미움받는 사람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믿음이 마치 정의로 포장되고 있다는 위험성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국민적 상식이나 이치는 결국 미움, 감정, 기분의 다른 표현”이라며 “미움을 이유로 240만 공직자 등 배우자와 그 가족에 대한 잔혹한 형벌의 집행을 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법이 사람 잡는 데 많이 쓰이다 보니 대한민국 국민은 잔혹한 형벌의 굿판을 당연하게 느끼는 것 같다”, “다수, 대중의 기분, 심리, 감정에 따라 처벌한다면 다수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하다”, “흉악한 범죄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에 괘씸하면 죄다 사형시키길 바라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는 바로 이러한 전근대적 법인식 및 헌법의 대원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발언” 등 발언을 했다고 한다.(경향신문, 2024.7.25.)

후자 죄형법정주의 관련해서는, “외국인의 선물도 국가적 보존 가치 요건을 따져 기록물 여부를 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죄형법정주의 위반’”, “(신소련 형법, 나치스독일 형법의 경우처럼) 유추해석으로 벌하면 안 되고, 죄형법정주의에 입각해야 한다(유추해석으로 벌할 수 있다고 규정했던 역사에서 죄형법정주의의 어려움을 알 수 있다)”,“죄형법정주의가 사라진 문화대혁명 시절 수많은 사람이 인민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처벌받은 비극”, “죄형법정주의를 지킬 필요성” 등의 의견을 개진했다.(경향신문, 2024.7.25.)

권익위 다수 의견은 민주정치의 원리를 부정했다. “국민 상식이나 이치”를 옹호하는 소수 의견에 반대하고, “국민적 상식이나 이치는 결국 미움, 감정, 기분의 다른 표현”, “ 비합리적”, “정의로 보이는 착시현상” 등인 것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군중 심리를 매도하는 그 다수 의견 자체가 비합리적이며, 실제로는 정의가 아닌 자신들의 의견을 정의인 것으로 보는 착시 현상을 빚고 있음을 보게 된다.

또 다수 의견은 소수 의견에 대해 “전근대적 법인식 및 헌법의 대원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발언”, “다수, 대중의 기분, 심리, 감정에 따라 처벌한다면 다수(대중)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하다” 등으로 매도했으나, 그런 몰이해는 정확하게 권익위 소수 의견 아닌 다수 의견에게로 환원되며,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는 다수(대중)와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귄익위 소수 의견이 아니라, 그것을 매도하는 권익위 다수 의견 자체인 것으로 드러난다.

그 명백한 증거로서, 다수 의견이 죄형법정주의, 헌법의 대원칙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실제 스스로 법을 어긴 점을 들 수 있다. 김건희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을 무죄로 결론짓기 위해 억지로 법을 왜곡한 정황들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김건희 명품가방 수수를 무혐의 처리하면서 다수 의견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상 ‘선물’을 준 주체가 내국인일 경우에는 ‘국가적 보존가치’를 따져 기록물로 인정할 수 있지만, 외국인 선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개진했다. 이는 외국인 선물은 별도 요건 없이 대통령기록물이 돼서 신고 의무에서 제외된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권익위는 공직자윤리법 제15조에서 ‘신고·인도’ 관련 규정을 무시했다. 권익위는 ‘외국인에게 선물을 받았다’는 점만 인용해서, 외국인에게 받았기 때문에 명품 가방은 ‘대통령선물’이고,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는 ‘대통령 선물’은 신고 의무 규정이 없다는 논리를 개진했다. 그러나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대통령 선물’을 정의하면서 공직자윤리법 제15조를 준용하도록 한다. 이 조항은 공무원의 가족이 외국인에게 선물을 받으면 지체 없이 신고하고 선물을 인도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신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수 의견에는 법의 왜곡보다 더 심각한 일탈이 등장한다. 한편에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에 군중 심리와 민심은 정의가 아니라고 매도한 것이 그러하다. 명색이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 원칙인 다수결과 민심을 대놓고 정의가 아닌 것으로 폄훼한 것이다. 다수 의견에 따르면 죄형법정주의는 정의가 되고, 그 정의는 정의가 아닌 군중과 민심 위에 군림하게 된다.

다른 한편, 다수 의견은 죄형법정주의 자체를 위배한 정황이 있다, 명품 가방 수수에 연루된 김건희를 무죄로 결론짓기 위해 법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다수 의견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이 정의의 구현이 아니라, 부정의를 구현하는 도구로 이용될 수 있음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권익위에서 개진한 의견과 달리, 법에 따라 벌을 준다는 죄형법정주의는, 다수결이나 중우(민중은 어리석다) 개념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법을 누가 만드나? 국민 민초가 다수결로 만들어야 한다. 만일 법을 소수결로 만들거나 일인 독재자가 만드는 체제라면, 그것은 민주정치가 아니라 과두(소수)정치, 혹은 독재정치가 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법을 개정하는 것이 민중의 다수결로 이루어진다. 민중이 민회에서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500인 의회와 행정부는 결정권을 가진 곳이 아니라, 민회에서 결정된 것을 집행하는 집행기구였다. 누구라도 법을 개정하고 싶으면 각 개인이 민회에서 발안할 수 있었다. 다만 기존의 법을 고치고자 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하고, 기존 법의 정신에 어긋나는 위법 제안을 한 것으로 판단되면 처벌받는 위험부담을 감당해야 했다. 그 처벌의 기준은 개정법안이 표결에 붙여졌을 때, 1/5 찬성표도 얻지 못할 때이다.

지금 한국같이 법을 발안하거나 결정하는 권한을 국민이 갖지 못하고, 대통령과 국회에서만 가지는 것은 민주정치가 아니라, 소수정치 혹은 일인정이다. 국민발안권을 없앤 것은 박정희 유신독재 헌법이다. 그 체제가 아직 그대로 내려온다는 것은 지금이 독재 정권과 같다는 뜻이다.

그 일차적 책임은 대통령이나 대통령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을 고쳐야 하는 국회에 있다. 또 국회보다 더 큰 책임은 국민 민초 자신에게 있다.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하겠다는 의식 자체가 없거나 희박하기 때문이다.

또 다수 의견에서는 “유추해석으로 벌할 수 있다는 규정하에 죄형법정주의가 사라진 문화대혁명 시절 수많은 사람이 인민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처벌받은 비극” 운운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민주정치 자체가 실현된 적이 없다. 소련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봉건제도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행정권을 발동시킴으로써 중앙 권력이 독재화되었기 때문이다.

다수 의견에서 말하는 ‘인민 재판’이라는 개념이 자못 모호하다. 이 때 ‘인민’이 다수가 모여서 재판을 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재판관은 소수인데, 그 출신이 인민이라는 말인지가 불확실하다. 인민 재판이란, 다수 군중이 재판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이름을 빌어 소수 재판관이 하는 것이다. 다만 그 소수는 법조계 출신이 아니라, 보통 양식을 가진 민간인도 참여할 수 있었을 뿐이다.

법조계가 아니고 그냥 상식을 가진 인민(민중)이 재판하면, 그 재판관이 소수라도 군중심리를 가진 것이 되나? 법조계 출신 재판관이거나 비법조계 인민(시민)이거나 간에 소수의 재판관은 군중 심리와 무관하다. 법조계 출신 소수는 법을 배웠으므로 군중 심리를 갖지 않고 또 이성적인데, 비법조계 출신은 법을 배우지 않았으므로 군중 심리를 가진 것이라 정의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군중 심리는 법을 배운 법조인이라고 해서 해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은 군중 심리가 정치나 재판을 좌우했다고 할 정도로 군중의 세력이 정치화된 적이 없었다. 군중이 정책을 결정하는 민주정치가 중국에서는 발달하지 않았다. 문화대혁명 자체는 군중 심리에 의해 야기된 것이 아니었고, 정반대로 독재적 권력구조가 낳은 획일적 정책의 일환이었다. 재판은 정치에 이용되었을 뿐이고, 그 소수의 재판관이 법조계 출신인가, 일반 민중(인민)인가의 여부는 큰 의미가 없다.

더구나 군중과 개인의 심리를 서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사람은 모인 숫자와 무관하게 같은 심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판에 참여한 경우라면 군중 심리란 인간 심리, 인간이 갖는 불완전성으로 보편화할 필요가 있겠다.

법을 배우지 않은 이들이 재판을 하는 사례는 문화대혁명의 중국에서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배심원 재판, 북한의 1심 재판 등이 그러하다. 미국 배심재판의 배심원들은 법조계와 무관하게 일반시민들이며, 이들이 우선 유무죄 여부를 판단한다. 그 후 법조 재판관이 형량을 결정하는데, 그 형량 결정에서 시민 배심원단의 의견을 참조한다. 지금 북한에서도 1심 3명의 재판관은 1명의 법조 출신, 2명의 시민(인민)으로 구성된다. 3명의 결정권은 동등하다. 법조계 출신 아닌 인민(시민)은 상식을 가지고 재판한다.

우리 한국에서도 법조계 카르텔이 빚는 부작용을 척결하기 위해, 배심제도 도입 여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들러리로 참조만 하는 배심제가 아니라, 기소(대배심제) 여부, 혹은 유무죄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 배심제도를 뜻한다. 나아가, 현재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기소를 개인이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는 검찰이 아니라 개인이 형사 기소권을 갖는다.

권익위 다수 의견에서는 문화대혁명 때 인민 재판에 의해 많은 이가 처벌받았다고 했으나, ‘인민’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인민’과 거리가 먼 이승만 정권 하에서는 재판도 받지 못하고 수많은 이가 곳곳에서 학살당했다. 그것은 재판에 의한 처벌도 아니었고, 막무가내 보이는 대로 잡아서 어디론가 끌고 가서 죽여버렸고 암매장했다. 거기에 경찰 등 공권력은 물론 서북청년단 등 조직에 의한 테러까지 가세했다. 이 또한 식민지배의 전통을 이은 비민주적 중앙집권의 정부 권력이 뒷배를 대고 있었다.

권익위 다수가 소수 의견에 대해 퍼부은 비난, “대한민국의 법이 사람 잡는 데 많이 쓰이다 보니 대한민국 국민은 잔혹한 형벌의 굿판을 당연하게 느끼는 것 같다”, “다수, 대중의 기분, 심리, 감정에 따라 처벌한다면 다수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하다”, “흉악한 범죄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에 괘씸하면 죄다 사형시키길 바라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는 바로 이러한 전근대적 법인식 및 헌법의 대원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발언” 등은 오롯이 부메랑이 되어 다수 의견으로 향하여도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권익위 다수 의견이야말로, 소수 특정인을 잡지 않는 데 법을 쓰고, 겉으로 근대적 법인식과 헌법의 대원칙을 내세우면서 안으로는 법을 왜곡하고, 다수결의 민주주의를 폭력으로 매도하면서 소수 권력자의 범법 혐의를 방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익위 다수 의견은 한편으로, 죄형법정주의를 옹호하고, 다른 한편, 군중 심리를 비이성적인 폭력으로 매도했다. 그러나, 권익위원회가 김건희 명품백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죄형법정주의를 외치는 이가 언제나 법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법은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민주정치의 전형 고대 아테네의 고명한 변론가 데모스테네스는 법 원칙 자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의 손을 통해서 달리 적용되고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부당 행위 당한하고 소리를 지르면, 법이 달려가서 그를 도우는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법은 그냥 글로 적혀진 것이라 행동을 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여러분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법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을 때, 여러분이 법을 지키고, 법이 전능의 권위를 가지도록 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법은 여러분에 의해 힘을 갖고, 또 여러분은 법에 의해서 힘을 받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스스로를 보호하듯이, 피해 본 이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에요. 위법의 부당행위는, 누구에 의해 자행된 것이든, 공동의 현안이며, 공적 기여, 동정, 인맥, 어떤 꼼수 등 그 어떤 사유에 의해서건 양해가 성립되어 위법한 이가 처벌을 면하도록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출처, 데모스테네스, 변론 21. 22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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